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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일자리 문제, 해결 실마리는?
2020.06.05
작성 : 2024년 09월 05일 (목)
조합원 일자리 문제,

단결 강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다



 

2020.06.05


 

방송시장에는 해마다 수많은 신인 연기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유명인들도 드라마의 요직을 차지하는 걸 쉽게 본다. 이런 환경에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배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작품에 출연한 명배우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무대 밖으로 밀려난 연기자들은 직업 정체성을 상실할 뿐 아니라,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방송연기자에게도 고용 문제는 예외가 아니지만, 방송사업자나 정부기관 등 방송산업 관련 주체들은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조합원 중에는 과거 방송의 주역이었던 연기자들이 다수 가입되어 있다. 이들은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불균형으로 인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합의 근간이 흔들릴 뿐 아니라 방송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연노가 긴 소송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가운데 방송시장은 전에 없는 큰 변화를 맞이했고 일자리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때문에 대법원 승소 이후 들어선 제15대 집행부는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단결 강제의 개념

노동조합은 근로자의 단결을 통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조직화되지 않은 근로자는 힘을 발휘할 수 없기에 노동조합을 통해 사용자와 교섭하여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 단결력이 강할 수록 노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강력해진다. 단결 강제는 이 단결력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특수한 조직 형태다.

단결 강제의 목표는 기존 조합원의 이탈을 방지 하고 조합원이 아닌 근로자를 조합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조합가입이나 조합원 자격 유지를 강제하는 게 적법한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지만, 한국에서 는 단결을 강제하는 것(적극적 단결권)이‘단결하 지 않을 권리(소극적 단결권)’에 앞선다고 보는 것 이중론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존재 의의와 활동 취지를 더욱 보장하고 강화하기위해서다.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단체행동은 곧 사용자에 대한 대항력이다. 조합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사용자에 대한 협상력 약화로 이어진다. 때문에 단결 강제를 통해 조합에 가입시키거나 조합에 협조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법으로 보장한 취지와도 상응한다.

단결 강제의 대표적인 형태로는 숍제도가 있다. 근로자가 고용되면 일정 기간 내에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 유니온 숍, 조합원이 아니어도 조합비를 공제하는 에이전시 숍, 이해를 공통으로 하는 모든 노동자를 조합에 가입시키고 조합원임을 고용의 조건으로 삼는 클로즈드 숍 등이 대표적이다.

강제력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비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비조합원에 대한 조합원의 이권을 보장함으로써 조합 가입을 강제하고 이탈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위 숍제도는 일정한 법적 요건을 충족한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협상을 통해 운영할 수 있다.


한연노에 맞는 숍 제도를 검토해야

한연노에 적용할 수 있는 숍은 어떤 게 있을까? 방송연기자라는 직군과 방송산업의 면면을 고려한다면 비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보다는 조합원의 이익을 강조하는 방식이 적합해 보인다. 예컨대 조합원을 방송에 우선적으로 캐스팅 하게 하고 단체교섭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출연료 인상분이나 복지혜택을 조합원에게만 적용하는 등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고용조건에 차등을 두는 방안인데, 이는 변형된 숍 제도의 일종인 프레퍼 렌셜 숍(Preferential Shop)이라 분류할 수 있다.

미 방송사들과 활발히 교섭하던 지난해, 협상팀은 이와 유사한 안건을 교섭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방송사들은“자본주의 시장에 역행하는 것이고 위법성이 우려된다”며 노조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단결 강제 사례가 워낙 드물어 참고할 만한 판례나 법, 제도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사측에서 이를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숍제도로 명명되지 않았을 뿐 한연노는 이미 단결 강제를 시행 중이다. 현재 성우지부와 무술연기자지부는 종사자 대부분이 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코미디언지부는 공채를 통해 선발된 신인 코미디언의 가입을 적극 권장하여 조 합원 비중을 어느정도 확보하고 있다. 다만 탤런트지부와 연극인지부는 사정이 다르다.

드라마 시장이 커지면서 비조합원 연기자들의 방송 출연 비중이 높아졌고 이에 양 지부 조합원의 일자리를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의 고용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체 협상을 통해 프레퍼렌셜 숍 등 단결 강제를 조합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한가지 더 검토해볼 만한 것이 근로자공급사업이다. 직업안정법 제33조에서 규정한 근로자공급사업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만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시행할 수 있다. 이는 직업 소개나 근로자파견사업과는 다르다. 중간착취나 사용자의 책임 회피 가능성을 우려하여 법적으로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한연노가 근로자공급 사업권을 얻게 된다면 방송사와의 협상에서 단결 강제 협약에 대한 명분을 얻을 수 있고 보다 명료한 요구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단결 강제와 근로자공급사업을 결합 한 대표적인 모델로는 항운노조를 꼽을 수 있다. 과거 항운노조는 근로자공급사업을 기반으로 클로즈드 숍을 운영하며 항만 사업자에 대한 독점적 노무공급권을 가지고 있었다. 항만에서 하역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노조에 가입해야 일을 할 수 있었고 사업주는 노조를 통해서만 인력 을 수급할 수 있었다. 현대의 법체계 아래에서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한연노가 항운노조의 사례를 모방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항운노조의 독특한 지위는 산업의 특수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몇 년 전 노무공급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현실적인 제약에 부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단결 강제와 근로자공급사업을 시행 중인 노동조합을 찾아보기 어렵다. 드물게 존재하는 다른 숍 제도 사례마저도 유명무실해지는 추세다. 강력한 단결을 통한 대 사용자 교섭력 강화는 모든 노동조합이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노동운동의 역사가 길지 않고 친기업 정서가 여전히 강한 한국에서는 단결 강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이 무척 높은 게 사실이다.

다만 확실한 건 사례가 많지 않더라도 방송사 의 주장처럼 노사 협상을 통해 단결 강제를 운용 하는 게 결코 위법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단결 강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적은 없다. 이는 비단 한연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노동조합과 근로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노사뿐 아니라 관계 정부부처의 관심과 협력,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단체협약을 통한 단결 강제는 조합원 권익확보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은 방송연기자들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당장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조합원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을 검토하고 목표 해결을 위해 모두의 지혜와 의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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